
이중섭, <도원>
종이에 유채
65 x 76 cm
1953년경
<도원>은 종이에 유채로 그린 그림인데, 복숭아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천도복숭아와 가지에 매달린 발가벗은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물이 있고, 크고 작은 봉오리들이 있는 곳에 서 있는 천도복숭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남자아이가 노는 광경을 통하여 낙원의 느낌을 나타냈다.
또한 벽화적 지향을 드러냈으며 도원에는 이중섭 예술의 모든 특징이 종합적으로 내제되어 있으며 인간과 자연이 무념무상의 세계에서 함께 어울리는 환경을 보여주는데, 무위 자연의 도교적 세계를 상징한다. 모든 것들이 성스러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이중섭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래현, <노점>
종이에 채색
267 x 201 cm
1956
국립현대미술관

노점은 1956년 우향 박래현이 남편 김기창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피난 생활을 하고 있을 때를 그린 한국화로, 같은 해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노점은 연작인데, 노점A와 노점B가 있다. 두 작품 모두 피난민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지만, A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노상 풍경이라면, B는 남성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림에는 평범한 서민들의 시장 풍경이 묘사되어있다. 각박한 시대 속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며, 1950년대 한국의 보편적인 서민상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배열이나 조형이 눈에 띄고, 다소 소소하고 정겨운 느낌을 준다.
판자집과 같은 허름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좌측에 위치하는 사람은 옥수수가 가득 담긴 함지박을 들고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측에는 아이를 업고 함지박에 물건을 담아 시장에 팔러 나온 사람이 보인다. 중앙에는 길 한가운데 수레를 세우고 음식을 팔고 있는 사람도 있다. 멀리에는 세 사람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역시 시장 한 켠에 자리한 서민들의 모습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피부색은 적갈색으로 표현되었고, 배경이나 소품들은 회색 내지 누런 빛의 색으로 표현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맑고 오묘한 색상과 기하학적인 형태들, 예리한 필선에서 현대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노점은 시기적으로 구상적 표현시기를 지난 박래현의 반추상화 표현시기 작품이다. 해방 이후, 한국화단에 주어진 과제는 기존의 일본식 화법을 타파하고 한국적인 미술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동양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려는 박래현의 노력은 입체적 공간 해석과 면 분할로 이루어졌다. 선은 부드러워지고 변형은 더 심화되면서 추상화 시대로 옮겨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박래현은 피난 생활을 하면서 입체주의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사실적이고 관념 중심의 화풍에 매어 있던 표현양식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한편, 대담하게 생략할 곳과 과장할 곳을 구분해 주제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의 화풍은 기존의 사실적인 묘사에 입체파적 양식을 더한 반추상화로 변화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점차 고수하던 사실적 표현을 떠나 형태와 구성에 집중한 화풍으로 완전히 바뀌어갔다. 196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추상화를 그렸다. 이러한 작품 변화는 화가 자신에게나 한국 화단의 발전사에서도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전환의 의미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노점은 화가 박래현의 화풍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박래현의 구상적 표현시기와 추상 시기의 과도기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도호, <바닥>
PVC 인물상, 유리판, 석탄산판 (phenolic sheets),
폴리우레탄 레신
8 x 100 x 100 x (8) 유리판 포함
1997-2000
국립현대미술관
산업혁명 이후 과학 발전은 지속적이고 뚜렷하게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로 인한 소득의 상승으로 인간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생활은 풍요로워졌지만, 급격히 변화된 사회로 인해 가치관의 갈등, 사회의 불평등과 인간소외 현상, 개인의 정체성 부재, 인간 이기주의 등 여러 사회 문제가 초래됐다. 모든 가치가 의문시 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예술가들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겪었던 갈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작품을 매개체로 세상을 향해 문제 제기를 외쳤다. 서도호도 작가가 겪었던 사회·문화 그 자체를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던져 주고 있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 작품은 그 생각들의 결과이다.”
위에 서도호가 언급한 말처럼 그는 삶 속에서 겪었던 생각들을 작품의 표현 소재로 삼았으며, 특히 ‘현대사회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 ‘세계 속 현대인의 정체성 고찰’ 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자아를 탐구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하며 의미를 생산하는 노마드 특성을 가진 서도호의 작품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서도호의 <집> 작업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유목민처럼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며 살아온 작가의 또 다른 자화상이며, 집이라는 매체의 이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노마디즘의 유동적인 특성을 <집> 작업들을 통해 표현했다. 다음으로, <바닥(Floor)>(1997∼2000), <카르마(Karma)>(2003)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 상호 소통 문제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작가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결을 전개시킨 초기의 작품 주제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이다. 개인성과 집단성의 모순과 갈등을 다루는 권력 구조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바닥>에서 드러난다. 안과 밖, 개인과 전체 속에 우리의 자아에 대해질문을 던진다. <바닥>은 이질적인 혹은 동일한 문화 속에서 ‘자아’라는 본질적 의문에 대한 탐구에 시작된다. 전시장에 들어가 작품을 접할 때 관람객들은 군상위의 유리판을 걸으며 작품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 체 작품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천천히 유리 위를 한참 동안 밟고 서있거나, 공간을 둘러보고 난 후 관람객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작품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시 공간 안에서 개별 작품으로 드러나는 대신 작품과 전시공간의 연장이 된다. 이는 멀리 있으면 장소에 묻혀있는 듯 작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섬세한 구성요소들이보이며 작품에 다가 갈수록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의 거대함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밟고 서 있던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작품은 PVC(폴리염화비닐)로 만든 수만 개의 작은 군상들이 공간 없이 빽빽하게 서서 손을 뻗은 뒤 유리판을 떠받치고 있다. 인물상들을 자세히 보면 남자, 여자, 백인, 황인, 흑인의 서로 다른 인종과 성별로 이루어졌으며 머리모양, 의복도 서로 다른 개별의 인물상들이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획일화된 모습으로 유리판 밑에 빼곡하게 압축된 사람들이 유리판을 받치고 있는 동시에 그곳을 답답해하며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만 개의 군상들은 개개인의 고유의 특성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개성이 압살당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인과 닮아 있다. 유리판의 안과 바깥의 부딪침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같다. 이처럼 서도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관계속의 ‘정체성’ 에 대해 관람객들에게 묻곤 한다.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개인적 자아에 대한 정체성까지 우리는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존재 이유를 찾는다.
<바닥>의 또 다른 의미는 개인성과 집단성의 모순과 갈등을 다루는 권력 구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두가 개성을 지닌 인격체이며 독립된 하나의 존재이지만 거대한 사회에서 그 개인들의 존재는 미미하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사회의 커다란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군중 속 작은 존재일 뿐이다. 서도호는 <바닥>에서 사회적 구성원과의 사회적 관계를 조망했는데, 사회와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나와 사회를 떨어트릴 수 없으며, 전체도 개인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개인과 집단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상생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과연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인지 의문점을 작품과 직접적으로 마주했을 때 생각하게 한다. 전시장에 오가는 관람객들의 발에 짓밟힌 작은 군상들은 우리에게 전체의 목적을 위해 결국 희생당한 개인의 저항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집단에 소속된 개인은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지만 개인의 개성은 사라져 버리며, 집단 속에서 또 다른 관계 형성의 조화를 위해 자기 자신을 억누르는 익명의 소리 없는 외침을 보여준다. <바닥>에 표상된 사회적 문제는 개인성과 집단성의 모순의 갈등이다.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의 혼란 속에서 현대인의 공동체적 동질화를 탈피하고 다름을 수용함으로써 개인-집단이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야 하며, 세계 속에서 우리의 존재, 존재된 방식과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찾아가는 과정이다.

양혜규,
<Mountains of Encounter>
설치미술: 알루미늄 베네 치안 블라인드, 분말 코팅 알루미늄 걸이 구조, 강철 와이어,
무빙 스포트라이트, 투광 조명, 플랫폼 사다리 및 케이블
2008
양혜규의 대표작 블라인드는 그녀가 2006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블라인드 소재는 전시장에서 유연하게 설치하고 공간을 구획하여 여러 감각기들을 투사해 낸다. 이를 통해 그녀는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넘나드는 ‘다른-공간’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하나의 주제가 존재하지 않아 다양한 작품 해석이 가능하다. 그녀의 작품세계의 그물망을 엮어내면 공간과 정체성에 관한 관심이 드러나는데 이는 미셸 푸코의 공간 사유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양혜규에게 블라인드는 단순히 특이한 재료 이상으로 복합적 면모와 가능성을 가진 하나의 시각적인 언어로 진화했다. 블라인드는 구체적인 인물이나 서사를 추상화하기도, 문화 인류적 구조에 대한 작가의 견지를 반영하거나 소환하면서, 인간 본연의 인식 체계를 자유로이 유영한다. 양혜규의 작품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과 관찰에서 시작되어, 일상적인 잡동사니를 오브제로 삼아 빛, 열기, 바람, 향기, 소리 등을 투과시킨다. 다만 그의 작품이 주관적 경험이나 관찰에서 출발하였더라도 양혜규는 그것을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관객의 감각과 사고를 일깨운다. 그리고 기성 제품인 블라인드를 이용하여 벽과는 다른 임의적인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완전하지 않은 추상적 공간을 표현하기도 공간 경험을 통해 사회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개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Mountains of Encounter>는 블라인드의 틈으로 붉은 블라인드 구조물로 전시장의 공간을 유연하게 가로지르며 빛도 그것의 방향성과 엇갈려 나타난다. 이는 현대적인 커튼으로 오피스나 가정에서 유리창에 불투명과 투명성을 동시에 부여하는 블라인드라는 일상소재로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내는데,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구획을 짓는 블라인드의 조형물은 물질성이 없으면서 공간 전체를 아우른다. 이는 내부와 외부 같은 분할 관계성뿐만 아니라 중심과 주변이 없는 파편화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녀에게 사적인 장소와 공적인 것 또는 개인의 경계들에 있어서의 교차에 관심을 가지며 이런한 경계를 중화시킨다. 그녀에게 있어 안과 밖 혹은 예술과 비예술은 대결적인 의미가 아니라 필연적인 동의어라 할 수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808년 5월 3일>
캔버스에 유화
268 x 347cm
1814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나폴레옹은 1807년 말에, 영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스페인을 침략했다. 1808년 봄, 나폴레옹이 마드리드를 장악하려 하자, 군중들은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것은 스페인 민중과 잔인한 나폴레옹 군대 사이에 벌어질 게릴라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고야는 스페인 왕실과의 관계를 끊어야 할 때라고 느꼈다. 그는 곧 동판화 연작 『전쟁의 참화』 제작에 착수했다. 이 작품은 광기 어린 당시의 전쟁에 대한 고야 자신의 깊은 분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지배층과 교회의 권모술수를 경멸했고, 민중이 고통당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했다. 마지막 판화 작품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제작되었으며, 인간성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의 행동들을 풍자했다.
고야는 난폭함을 규탄하고 싸움의 끔찍함을 표현했다. 감상자의 시선은 흰색 옷을 입은 희생자에게 끌린 후 어두운 무리의 군인들을 발견하고 시선은 다시 흰옷의 사람에게 옮겨진다. 시선의 왕복은 감상자가 이 장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야는 어두운 부분을 많이 배치하고 곧 죽게 되는 사람에게 조명을 비추며 주인공이 누구인지 명확히 표현했다. 바닥에 놓인 등불로부터 빛이 오고, 이는 죽게 되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비춘다. 장면의 극적 효과와 화면의 긴장이 이 조명으로부터 강조된다. 조명은 인물들을 난폭하게 비추면서 그들의 세부적인 심리를 드러내 인물들의 태도와 특징을 구별한다. 그림 중앙의 흰옷 입은 사람의 눈은 군인의 총에 집중되어 있으며 얼굴은 공포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남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팔을 올리고 있다. 그의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 고야는 남자의 오른손에 못 자국을 만들어 성스러운 상징을 표현했다. 이러한 죽음 앞에서의 태도와 빛을 받은 순수한 흰색 셔츠는 인물을 밝게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성스럽게까지 한다. 이는 스페인의 항쟁을 상징한다. 전경의 자기 피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마드리드 시민이 치른 희생을 상기시킨다. 프랑스가 저지른 탄압과 학살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곧 죽게 될 사람들은 여러 태도로 이 학살을 목격한다. 그들의 움직임과 많은 양의 피는 감상자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고야의 의지이다. 고야는 순교에 중요성을 두면서 억압의 부당함을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 복수와 응징은 전부 제외시켰다. 작품은 대체로 생기 없는 흐리멍덩하고 음침한 색을 보인다. 하늘은 캄캄하고 인질의 행렬은 어둠 속에 묻혔다. 이것은 사건의 중대성을 강조한다. 음영의 대비는 난폭함과 고요함의 대비를 상징하고, 고요함은 사건의 끔찍함과 대비된다. 언덕은 성당에서부터 줄지어 밀려오는 인질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고, 인질들은 언덕 밑의 구덩이 안에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 균열은 사람들이 비극의 끝을 바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상자에게 등을 보이는 군인에 의해서 처형이 표현되었다. 군인은 우리가 얼굴을 구별할 수 없는 익명의 살인자이다. 익명으로 존재하면서 탄압과 전쟁의 맹목적인 난폭함을 상징한다. 왼쪽의 처형되는 사람들의 자세는 무서움, 절망, 용기 등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오른쪽의 등을 보인 군인은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 이들은 열을 맞추어 뒤로 돌아서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그저 죽이는 기계와 같다. 이들은 총살당하기 직전의 살아 있고, 표정이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들과 대비되면서 살아있지만 죽은 자들처럼 묘사되었다. 삶과 죽음을 아이러니하게 대비시키면서 희생자들을 성스럽게 한다. 고야는 감정 표현에 중요성을 두어 감상자에게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 삭발례를 받은 성직자, 후경의 성당은 이 항쟁에서 가톨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보여준다. 스페인이 억눌리고 가라앉아 있던 바로 그 밤을 표현했지만 폭력과 강압적 힘을 부르지 않고 정신적인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그림은 “평화는 증오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고야의 애국심을 증명하는 도구지만, 프랑스군에 반대해서 반란을 일으킨 희생자들에 대한 오마주이자 탄압에 맞선 시민들을 찬양하는 송가이며, 스페인 정신의 구현이다. 억압에 맞서서 뭉친 자랑스러운 국가를 그렸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적 감정에 대한 오마주로 여겨진다. 이를 위해서 고야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시민의 입장에서 사건을 다루고 드러내고자 했다.
앙리 마티스,
<붉은색 실내>
캔버스에 유채
146 x 97 cm
1948
조르주 퐁피두센터
앙리 마티스가 그린 <붉은색 실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1946년부터 2년 동안 몰두한 ‘실내 풍경’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이다. 유화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의 무대는 그림 속 벽면 오른쪽에 걸린 그림 액자를 보면 그의 아틀리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붉은색 실내>는 마치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의 내용이 등장하는 ‘액자 소설’처럼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 액자가 등장한다. <파인애플이 있는 실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생전에 그의 작업실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림 속 그림 액자에 보이는 둥근 테이블과 모피 양탄자는 실제 그림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것, 화면 왼쪽에 보이는 흰색 사각형은 마티스의 또 다른 드로잉 작품인데, 어떻게 보면 창문의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흰 바탕 위에 검은색 선으로만 표현된 이 부분은 창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연상되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평소 붉은색을 즐겨 사용했다. 이 그림 역시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벽과 바닥의 구분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검은 선으로 처리한 테이블과 의자의 경계를 통해서 최소한의 공간감이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앞서 말한 대로 그림 왼쪽에 창문처럼 보이는 사각형 그림 액자로 인해 공간감이 충분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림자도 없고 원근법도 정확하지 않은 평면적인 화면이지만, 이런 의도로 인해 꽉 막힌 실내에서 마치 공기가 순환되고 햇빛이 비추듯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마티스의 그림에서 보이는 중요한 특징은 화려한 색채 감각과 평면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한편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는 서로 짝을 지어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벽에 걸린 액자 두 개, 둥근 테이블과 사각 테이블, 그리고 바닥에 깔린 모피 양탄자가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화면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의자는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이자 이 아틀리에의 주인인 마티스 본인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캔버스에 유채
22.4 x 30cm
1946
개인 소장품
<상처 입은 사슴>은 프리다 칼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미국에서의 수술이 실패한 후,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순간 속에서 느낀 실망감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작가는 여린 사슴의 몸에 사슴의 머리 대신 자신의 머리를 그려 넣었다. 그의 몸은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작품 밖의 관찰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작품의 배경엔 뒤로 펼쳐진 바다와 하늘에는 번개가 치고 있다. 모든 자연물의 묘사가 우호적이지 않은, 굉장히 적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폭풍우의 날씨 속 멀리서 빛나는 하늘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였지만, 사슴은 결코 거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사슴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죽어 있거나 가지가 부러져있는 생명이 거의 다한 상태이다. 그림의 왼쪽 아래에 나타나는 ‘카르마’는 ‘운명’ 또는 ‘숙명’을 뜻한다. 프리다의 대부분의 자화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 프리다는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자신을 표현했다. 프리다는 상처를 입은 자신의 극한의 상황과 배경에서 보여주는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묘사를 통해 당시 자신이 겪고 있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관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상처 입은 사슴>은 고통 속에서 벼랑 끝까지 몰려있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의연하게 우리를 응시하며, 굵은 눈물을 떨구는 순간에도 시선까지 떨구진 않는다. 그의 눈동자는 우리를 보며 그가 삶에 대해 불태운 의지를 전달해 준다. 그의 그림은 기존의 그림 속의 여성과 다르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어 과거 무수히 많은 그림 속 여성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앤디 워홀, <자화상>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274.3 x 274.3 x 3.8cm
1986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은 본인이 팝의 이미지가 되었고, 아이콘의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현실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했고 자화상을 제작함으로써 반복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미지에서 결점을 보이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였고 워홀이 항상 말한 결점은 “당신이 갖고 싶어 하는 이미지의 일부가 아니니 이미지에 들어가면 안 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에 대응하기 위해 워홀은 드러나지 않는 악세사리와 심플한 옷을 입었지만 외모는 그의 인생철학에 핵심으로 존재했고 그렇기 때문에 검정색 터틀넥과 은색 가발, 커다란 안경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워홀의 아이콘도 복제가 가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실크스크린의 주제로 삼았다. 자화상이라는 이름은 워홀에게 항상 그리고 오직 그의 피상적인 이미지를 의미했다. 워홀은 스타가 되기를 원했고 당대의 수많은 명사와 교류했다. 하지만 자화상을 그릴 때는 가발이나 선글라스로 자신을 숨겼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와 인기의 관계가 조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워홀은 “특별대우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가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나에게 심술궂게 군다.”라고 말했다.
제니 사빌,
<봉 위의 자화상
(Saville's Propped)>
캔버스에 유채
213.4 x 182.9cm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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